민주화 운동가들 “홍콩 시위서 보았다, 5월 광주와 1986년 권인숙·1987년 이한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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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Date
2019-11-2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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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부근 레넌벽 앞에서… 국가로부터 고립되고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홍콩 민주화 시위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현주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한상석 5·18민주화운동 서울기념사업회 고문, 이경란 이한열기념관장,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왼쪽부터)이 21일 서울 홍대입구역 부근의 레넌벽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곳에는 홍콩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글들이 써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박종철 열사 묘에 놓인 시위대 고글…연대 원하는 마음 느껴져
정부가 직접 중국 비판 힘들지만 시민은 인권 문제로 접근 가능
80년대가 지금까지 연결된 우리, 홍콩도 같은 상처 남을 것
이 ‘응어리’ 풀려면 진상규명과 책임자 확실한 처벌 필요
홍콩 시민 개개인 삶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도 연대로 힘 보태야


타인의 의사표현을 망가뜨린 행위다.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상석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고문이 21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걷고 싶은 거리 담벼락을 둘러본 뒤 말했다. 레넌벽을 둘러싸고 한국 대학생들과 중국 유학생들 사이 벌어진 갈등을 드러내듯 이날 벽은 분홍색 스프레이로 얼룩져 있었다. 최용주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은 “FREE H.K” 등 그나마 남겨진 응원 문구들을 휴대전화로 찍었다.

홍콩 시위대와 시민들은 한국에 연대를 호소한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진과 현재 홍콩 시위 사진이 비슷하다는 글이 올라온다. 5·18민주화운동과 6·10민주항쟁에 참여한 민주화 운동가들은 홍콩 시위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경향신문은 21일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한 고문, 최 연구원, 이현주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이경란 이한열기념관장을 만났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들이다.

- 홍콩 시위와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닮은 점이 많다고 한다.

이경란 = 홍콩 시위에서 1980년 광주와 1986년의 권인숙, 1987년의 이한열이 한꺼번에 보인다. 홍콩 시위에서 경찰에 체포된 여대생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뉴스를 보고 1986년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피해자 권인숙이 떠올랐다. 최루탄이 발사된 장면을 보고선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이한열이 생각났다.

최용주 = 시위대가 홍콩이공대에 고립된 장면은 광주를 연상시킨다. 국가가 시민 행동을 제어하는 가장 큰 방식은 시민들을 격리하고, 연대를 방해하는 거다. 이공대에 봉쇄된 학생들의 모습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전남도청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TV로 이공대 현장 영상을 보니까 눈물이 막 났다. 광주 전남도청에서 끌려나오는 내 선후배들을 40년 만에 보는 것 같아 어찌할 줄 몰랐다.

이현주 = 이공대에 고립된 중·고등학생들은 부모들이 데리고 나갈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학생들에게 신원을 적게 했다.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 ‘너희의 삶을 통제하겠다’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그들은 앞으로도 마음의 감옥에 살게 될 거다. 남영동 고문실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다 자백하겠다’고 밝힌 분도 있었는데, 이들도 고문을 당했다. 다시 나가서 민주주의를 요구하거나 자존감을 회복해 저항하지 못하도록 마음을 짓밟은 거다.

- 홍콩에선 연대를 호소한다.

한상석 = 5·18 당시 시위대를 곤봉으로 내려치는 사진과 홍콩 경찰이 시민을 진압하는 사진을 나란히 보았다. 과거 기억이 자연히 떠올랐고 연대의식이 생겼다.

이현주 = 박종철 열사의 묘가 있는 마석 모란공원에 다녀왔다. 묘 앞에 함이 하나 놓여 있는데, 누가 홍콩 시위 사진과 고글을 넣어놓고 갔더라. “Free H.K”라는 글귀가 적혔다. 홍콩 시위 현장에서 쓰인 고글 같았다. ‘이 사람들이 참 간절하게 지지와 연대를 원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더라. 마음이 너무 아팠다. 홍콩 시위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던데, 나는 본질이 궁금하지 않다. 시민 저항 아닌가.

이경란 = ‘님을 위한 행진곡’이 광둥어로 번역돼 불렸다. 우리가 1980년대 ‘흔들리지 않게’(We Shall Not Be Moved), ‘누가 보았는가 저 부는 바람을’(Blowin’ in the Wind) 같은 미국 운동가요를 불렀던 게 기억났다. 우리가 1980년대 불렀던 노래가, 우리의 20대 때 투쟁이 외국의 누군가에게, 자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있구나 싶었다.

최용주 = 한국은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다. 광주에서 개최하는 아시아인권포럼에 홍콩 사람들이 많이 온다. 거기서 ‘님을 위한 행진곡’도 배워서 간다. 2016년의 촛불도 강렬한 경험이다.

- 대학생 등 한국 시민들이 연대 의사를 표하고 있는데.

최용주 = SNS를 통한 주장의 연대, 구호의 연대가 중요하다고 본다. ‘말’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1980년 광주 때는 국내외적으로 말이 단절됐다. 그게 광주 사람들에겐 트라우마로 남았다. 홍콩 시민들과는 메시지를 주고받고 홍콩 상황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이경란 = 국가폭력이나 공권력은 개인의 힘과는 상대가 안된다. 그래서 공권력은 엄격히 제한된 상황에서만 실시돼야 한다. 지금 홍콩 경찰이 시위대에 저지르는 것을 보면 통제가 없다. 이 점에서 중국과 홍콩 정부에 항의하고 홍콩 시민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현주 = 모란공원에 놓인 홍콩 시위 고글을 보면서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와서 고글을 놓은 심경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손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한다. 홍콩에서 국가폭력을 당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선 국제적으로 시민 저항권의 정당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한국 정부가 홍콩 사태에 침묵한다는 비판이 있다.

최용주 = 정부가 중국을 비판하긴 쉽지 않을 것 같다.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 때문이다. 대신 지방정부가 비공식적인 대리자로서 연대의식을 표할 수는 있다고 본다. 예컨대 광주는 유사한 역사적 아픔을 가진 곳이고, 인권도시라는 이름도 갖고 있지 않나.

한상석 = 우리가 사드 때문에 중국과 마찰을 빚었다. 중국과의 외교, 국제적 현실을 뛰어넘어서 정부가 뭔가를 밝히는 일을 두곤 조금 더 현명하게 처신해야 할 것 같다.

이현주 = 동의한다. 다만 보편화된 의제를 형성해갈 필요는 있다고 본다. 인권, 국가폭력에 대한 시민 저항권 같은 이념 말이다. 건강한 민주주의 정부가 되려면 국가가 시민 저항권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저항권이 발현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그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건 중요한 일이다.

- 홍콩의 현 상황이 홍콩 시민들에게 상처로 남지는 않을까.

이경란 = 1980년대를 살아온 우리가 지금까지 그때의 상황, 기억과 연관된 활동을 하는 것도 그 상처와 연결돼 있다. 응어리가 해결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광주, 박종철, 이한열, 세월호 등 한국 사회가 거쳐온 모든 상처가 그러하듯이 응어리를 푸는 첫 번째 단추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그게 안되면 상처가 곪는다. 공권력의 폭력이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독일의 인권기념관들은 경찰, 군인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상부에서 명령이 오면 어디까지 따르고 거부할 것인가를 묻는다. 나치가 유대인과 집시를 학살했을 때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인권 개념이 형성되면 경찰, 군인도 상부 명령을 판단하고, 잘못된 일에 저항할 수 있게 된다.


이현주 = 남영동에서 고문당한 피해자 분들을 인터뷰하고, 광주에 가서 피해자와 유족이 어떻게 치유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을지 여쭤볼 때가 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시민과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거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이 이뤄지려면 오랜 세월이 걸린다. 그사이 피해자 개개인의 삶은 다 무너진다. 공동체 속에서 국가폭력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한 사람들은 피해자들과 엮이기를 두려워한다. 그 폭력이 내게도 스며들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홍콩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개개인의 삶과 정신이 무너지지 않도록 공동체가 끊임없이 연대하고 힘을 모을 방법이 필요하다. 주변, 같은 지역에서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연대해야 한다. 취직할 때나 학교 교육 과정에서도 피해자를 과감하게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1212129005&code=940100#csidx67de652749eb6f0bb58a64c86b1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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